2월 삿포로 여행, 시티아이젠 없이 갔다가 응급실 갈 뻔한 썰 (눈 절대 안 녹습니다)

 

❄️ "도시인데 제설은 다 했겠지"라는 오만

2년 전 2월, 저 역시 질문자님과 똑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아무리 눈의 도시라지만, 삿포로는 대도시잖아? 지하도도 잘 되어 있다던데 굳이 촌스럽게 아이젠까지 챙겨야 해? 서울 눈길 정도겠지.'

그 생각은 신치토세 공항에서 쾌속 열차를 타고 삿포로역에 내려, 밖으로 한 발자국 내디딘 순간 산산조각 났습니다. 눈은 발목까지 쌓여 있었고, 그 눈 아래는 수많은 사람들의 발길에 짓눌려 단단해진 '아이스링크'였습니다.

스스키노의 횡단보도에서 신호가 바뀌어 급하게 뛰려던 순간, 제 몸은 공중에 붕 떴고 엉덩이로 착지했습니다. 캐리어는 저만치 미끄러져 나갔고, 지나가던 일본인 할머니가 "다이죠부?" 하며 안쓰럽게 쳐다보셨죠. 그때 깨달았습니다. 이곳은 서울의 겨울과는 차원이 다른 '겨울 왕국'이라는 것을요.

이 글은 저처럼 엉덩방아를 찧고 후회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적어 내려가는, 피와 땀(그리고 멍)이 서린 2월 삿포로 생존 가이드입니다.

삿포로여행, 2월홋카이도, 시티아이젠, 겨울여행준비물, 삿포로눈축제



💡 핵심 요약 (결론부터 말씀드립니다)

질문자님, 시티아이젠(또는 미끄럼 방지 패드)은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무조건 챙기세요.

  1. 눈 상태: 2월은 삿포로 눈 축제 기간입니다. 일 년 중 눈이 가장 많이 쌓여 있고, 가장 추운 시기입니다. 눈이 녹아있을 확률은 0%에 수렴합니다.

  2. 도로 사정: '로드 히팅(도로 열선)'이 깔린 곳은 일부 번화가뿐입니다. 대부분의 인도는 낮에 녹았던 눈이 밤에 다시 어는 과정을 반복하며 완벽한 빙판길이 됩니다.

  3. 구매 타이밍: 현지 편의점에서도 팔지만 비싸고(약 1,500엔~2,000엔), 사이즈가 없을 수 있습니다. 한국 다이소나 온라인몰에서 5,000원 내외로 미리 사가는 것이 가장 현명합니다.


STEP 1. 🥶 2월 삿포로의 바닥은 '거울'이다

많은 분들이 "눈이 많이 오니까 푹신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하시는데, 이것이 가장 큰 오해입니다.

1. 압설(Pressed Snow)과 아이스반(Ice Barn)

삿포로의 인도는 수만 명의 관광객과 현지인이 밟고 지나갑니다. 갓 내린 눈은 금세 밟혀서 단단해지고, 낮 동안 햇빛에 표면이 살짝 녹았다가 해가 지면 영하 10도의 기온에 급속 냉동됩니다.

이것이 반복되면 아스팔트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두꺼운 얼음층이 형성되는데, 현지에서는 이를 '츠루츠루(미끌미끌) 노면'이라고 부릅니다. 말 그대로 거울처럼 반질반질합니다.

2. 숨겨진 암살자, 블랙 아이스

눈이 치워진 것처럼 보이는 검은색 아스팔트 위도 안심할 수 없습니다. 얇은 얼음막이 코팅된 '블랙 아이스' 구간이 많아, 방심하고 걷다가 뒤통수 깨지기 딱 좋습니다. 특히 횡단보도 흰색 페인트 부분지하철 입구 계단은 죽음의 코스입니다.


STEP 2. 👢 신발 선택과 아이젠 활용법

그렇다면 어떤 신발을 신고, 어떻게 아이젠을 써야 할까요?

1. 신발 선택 가이드

  • 어그부츠 (비추천 ❌): 따뜻하지만 밑창이 스펀지라 삿포로 빙판에서는 스케이트 타는 것과 같습니다. 방수도 안 돼서 눈 녹은 물에 젖으면 최악입니다.

  • 일반 운동화 (주의 ⚠️): 나이키, 뉴발란스 등 일반 운동화는 밑창 홈이 깊지 않아 미끄럽습니다. 젖는 것도 문제입니다.

  • 패딩 부츠/등산화 (추천 ✅): 방수가 되고 발목을 잡아주는 신발이 좋습니다. 쏘렐이나 노스페이스 같은 방한 부츠가 베스트입니다.

2. 시티아이젠의 종류와 사용법

본격적인 등산용 체인 아이젠(쇠발톱이 큰 것)은 필요 없습니다. 도심에서는 불편하기만 합니다.

  • 도시형 아이젠: 고무 밴드 형태로 신발에 끼우는 방식이며, 바닥에 작은 스파이크나 코일이 달려 있습니다. 탈부착이 쉬운 것을 고르세요.

  • 실내 진입 시: 백화점, 편의점, 지하상가 등 실내에 들어갈 때는 반드시 벗어야 합니다. 실내 바닥(타일)에서 아이젠을 신으면 쇠 소리가 시끄럽게 날 뿐더러, 오히려 미끄러워 넘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머니에 넣을 수 있는 비닐 지퍼백'을 꼭 같이 챙기셔야 합니다.


STEP 3. 🐧 삿포로 시민처럼 걷는 법 (펭귄 걸음)

아이젠을 찼더라도 걷는 자세가 잘못되면 넘어집니다. 홋카이도 주민들의 필살기, '펭귄 보행법'을 익혀가세요.

  1. 보폭 줄이기: 평소보다 보폭을 절반으로 줄여 종종걸음으로 걷습니다.

  2. 무게 중심: 무게 중심을 약간 앞으로 둡니다. 뒷짐 지거나 주머니에 손 넣고 걸으면 뒤로 넘어져 뇌진탕 위험이 큽니다. 장갑을 끼고 손은 밖으로 빼세요.

  3. 수직 착지: 발뒤꿈치부터 닿는 것이 아니라, 발바닥 전체가 지면에 동시에 닿도록 '쿵쿵' 찍으며 걷는 느낌이어야 합니다.


📊 한눈에 보는 신발별 생존 확률

가독성을 위해 표로 정리해 드립니다.

신발 종류보온성미끄럼 방지2월 적합도비고
일반 스니커즈🥶절대 비추발 시리고 젖고 넘어짐
어그 부츠🔥비추밑창이 너무 미끄러움
등산화😐⭐⭐⭐보통덜 미끄러우나 발 시릴 수 있음
방한부츠 (단독)🔥⭐⭐⭐추천밑창 홈 깊은 것 필수
방한부츠 + 아이젠🔥⭐⭐⭐⭐⭐강력 추천천하무적 (단, 실내 탈착 번거로움)

❓ 자주 묻는 질문 (Q&A)

Q1. 2월 말에 가는데 그때는 좀 녹지 않았을까요?

A. 전혀요. 삿포로의 2월은 한겨울입니다.

3월 중순은 되어야 질척거리며 녹기 시작합니다. 2월은 눈 축제가 열릴 만큼 눈이 가장 건재한 시기이니 기대하지 마세요. 오히려 2월 말이 되면 낮에 살짝 녹은 눈이 밤에 얼어붙어 빙판이 더 심해지기도 합니다.

Q2. 현지 편의점(세이코마트, 로손)에서 사면 안 되나요?

A. 가능은 합니다만, 비쌉니다.

일본 편의점에서는 보통 1,000엔~2,000엔 정도에 팝니다. 한국 다이소나 쿠팡에서는 3,000원~5,000원이면 삽니다. 게다가 눈 축제 기간에는 관광객이 몰려 편의점 아이젠이 품절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맘 편하게 한국에서 사 가세요.

Q3. 스프레이형 미끄럼 방지제는 어떤가요?

A. 효과가 매우 일시적입니다.

신발 바닥에 뿌리는 스프레이는 눈길을 조금만 걸으면 금방 벗겨집니다. 삿포로처럼 눈이 깊고 계속 걷는 여행지에서는 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물리적인 스파이크가 박힌 아이젠이 최고입니다.


🏁 안전이 최고의 여행 준비물

여행 가서 다치는 것만큼 서러운 일은 없습니다. 특히 뼈가 부러지거나 인대가 늘어나면 남은 일정을 모두 호텔 방에서 보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저의 2년 전 2월 삿포로 여행은 엉덩이의 멍과 함께 시작되었지만, 이 글을 읽는 질문자님은 튼튼한 방한 부츠와 시티아이젠으로 당당하고 안전하게 홋카이도의 설경을 즐기셨으면 좋겠습니다.

"설마 미끄러지겠어?" 하지 마시고, 5천 원의 투자를 아끼지 마세요. 삿포로의 눈은 아름답지만, 그 바닥은 냉혹합니다. 즐겁고 안전한 여행 되시길 바랍니다!


※ 팁: 삿포로역에서 스스키노까지 이어지는 '지하 보행 공간(치카호)'을 최대한 활용하세요. 지상보다는 볼거리가 적지만, 이동할 때는 지하로 다니는 것이 체력 소모도 적고 훨씬 안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