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토리니의 푸른 지붕과 입국 심사대의 붉은 경고등
"칼리메라(Kalimera)! 좋은 아침이야, 지수."
꿈속에서도 들리던 그리스어 인사말. 2026년 1월,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다짐했었다. '올해 여름, 반드시 다시 돌아온다.' 지난겨울, 12월 5일부터 1월 16일까지 43일간 머물렀던 그리스는 내 인생을 바꿔놓았다. 아테네의 고대 유적보다, 크레타섬 할머니가 만들어준 무사카의 맛보다, 그곳의 언어와 사람들이 내 심장을 뛰게 했다.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나는 미친 듯이 알바를 했다. 목표는 5월. 지중해의 태양이 가장 찬란하게 빛나기 시작할 때, 다시 그리스로 가서 제대로 언어를 배울 작정이었다. 어학원 등록금과 생활비를 마련하고, 5월 1일부터 7월 말까지 약 85일간 체류할 왕복 항공권까지 결제했다.
"이야, 너 진짜 가는구나? 비자는 받았어?"
친구 혜리가 무심코 던진 질문에 나는 코웃음을 쳤다.
"야, 대한민국 여권 파워 몰라? 유럽은 무비자로 90일까지 있을 수 있어. 나 지난번에 43일밖에 안 있었으니까, 이번에 85일 있어도 합쳐서 128일이잖아? 1년에 반도 안 되는데 뭐가 문제야?"
하지만 짐을 싸던 어느 날 밤, 유학원 커뮤니티에서 본 글 하나가 나를 공포에 떨게 했다.
[쉥겐국가 재입국하다가 입국 거부당하고 추방된 후기]
작성자는 나처럼 겨울에 유럽을 다녀왔다가 봄에 다시 나갔는데, 공항에서 '90/180 룰' 위반이라며 잡혀갔다는 내용이었다.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잠깐만, 180일 기간 내에 90일? 그럼 내 지난번 여행 날짜가 포함되는 건가?'
달력을 펴고 날짜를 세어보았다. 5월 1일에 입국한다고 치면, 거기서부터 거꾸로 180일을 세어보니 작년 11월 초가 나왔다.
"맙소사... 11월부터 계산하면 지난번 12월에 다녀온 43일이 고스란히 포함되잖아!"
계산기를 두드렸다. 허용된 90일 - 이미 사용한 43일 = 남은 기간 47일. 그런데 나는 85일짜리 비행기 표를 끊어놨다. 무려 38일이나 불법 체류를 하게 되는 셈이었다. 만약 이대로 인천공항을 떠났다면? 나는 아테네 공항 입국 심사대에서 붉은 경고등과 함께 '입국 거부' 도장을 받고, 다음 비행기로 강제 송환되었을 것이다. 산토리니의 푸른 지붕 대신, 공항 유치장의 회색 천장을 볼 뻔했다는 사실에 다리가 풀려 주저앉고 말았다.
🛑 "지금 떠나면 불법 체류가 됩니다"
질문자님의 계획대로 5월에 출국하여 85일간 체류하는 것은 현재 상태로는 불가능하며, 쉥겐 조약 위반(불법 체류)이 됩니다.
가장 시급한 해결책은 다음 두 가지 중 하나입니다.
일정 대폭 축소 (무비자 유지 시):
현재 질문자님에게 남은 무비자 체류 가능 일수는 약 47일입니다.
따라서 85일의 일정을 포기하고, 47일 이내로 귀국하는 항공편으로 변경해야 합니다.
비자 발급 (85일 체류 희망 시):
어학연수가 목적이라면 주한 그리스 대사관을 통해 장기 체류 비자(National Visa, D-Visa)를 발급받아야 합니다.
비자를 받으면 '90/180 규칙'의 적용을 받지 않고 비자 유효기간만큼 체류할 수 있습니다.
📝 굴러가는 180일, 그 야속한 계산법
많은 여행자가 오해하는 '쉥겐 조약 90/180 규칙'의 정확한 계산 원리를 설명해 드립니다. 이것을 이해해야 공항에서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습니다.
1. 90/180 규칙의 핵심 (Rolling Window)
오해: "1월 1일부터 6월 30일까지 90일, 그다음 7월 1일부터 리셋"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진실: 기준은 '오늘(체류일)'로부터 과거 180일을 봅니다. 즉, 여행하는 매일매일, 그날을 기준으로 뒤로 180일을 카운트했을 때 쉥겐국가에 머문 날의 합이 90일을 넘으면 안 됩니다.
2. 질문자님의 케이스 시뮬레이션
1차 여행: 2025.12.05 ~ 2026.01.16 (총 43일 사용)
2차 여행 예정: 2026.05.XX ~ (약 85일 예정)
만약 5월 1일에 그리스에 입국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기준일: 2026년 5월 1일
과거 180일 조회 구간: 2025년 11월 2일 ~ 2026년 5월 1일
이 구간 내 체류일: 지난번 다녀온 43일이 전적으로 포함됩니다.
따라서 5월 1일 입국 시점에서 사용 가능한 잔여일은:
90일(최대) - 43일(기사용) = 47일
3. 날짜가 지나면 리셋되지 않나요?
물론 5월 1일에서 시간이 흘러 6월, 7월이 되면 과거 조회 구간(180일 전)도 같이 밀려나므로, 작년 12월의 기록이 하나둘씩 빠져나가긴 합니다. 하지만 질문자님은 5월부터 '연속해서 85일'을 머물 계획입니다.
5월 1일부터 47일이 지나는 시점(약 6월 중순)에 이미 90일 한도를 꽉 채우게 됩니다.
과거 12월 기록이 180일 윈도우 밖으로 빠져나가면서 생기는 여유분보다, 현재 매일매일 쌓이는 체류일이 더 빠르기 때문에 중간에 반드시 불법 체류 구간이 발생합니다.
4. 위험성 경고 🚨
쉥겐 규정 위반은 단순히 벌금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SIS(쉥겐 정보 시스템) 등록: 불법 체류자로 기록되면 향후 5년 이상 유럽 27개국 입국이 거부될 수 있습니다.
강제 추방 및 벌금: 출국 심사 때 적발되면 고액의 벌금을 물고 여권에 '추방' 도장이 찍힙니다.
결론적으로, 어학연수라는 명확한 목적이 있으시므로, 안전하게 학생 비자나 어학 연수 비자를 받아 가시는 것이 유일하고 올바른 길입니다.
❓ 자주 묻는 질문 (Q&A)
Q1. 쉥겐 협약국이 아닌 나라로 잠시 나갔다 오면 90일이 리셋되나요?
👉 아니요, 리셋되지 않습니다. 영국(비쉥겐)이나 튀르키예 등으로 나갔다 오더라도, '과거 180일 내 체류일수'는 누적되어 계산됩니다. "비자런(Visa Run)"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규칙이 바로 이 90/180 룰입니다. 180일이라는 기간 자체가 지나가서 과거 기록이 소멸하기 전까지는 리셋은 없습니다.
Q2. 비행기 탑승일도 체류일에 포함되나요?
👉 네, 무조건 포함됩니다. 쉥겐 국가 영토(공항 포함)에 발을 딛는 순간부터 떠나는 순간까지가 모두 1일로 계산됩니다.
12월 5일 밤 11시에 도착했어도 1일.
1월 16일 새벽 1시에 떠났어도 1일. 따라서 본인의 여권 스탬프 날짜를 기준으로 계산해야 하며, 비행기 안에서 보낸 시간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Q3. 어학연수 비자를 받으면 무비자 90일은 사라지나요?
👉 아니요, 별개입니다. 비자를 받아서 체류한 기간은 '무비자 90일' 카운트에서 제외됩니다. 즉, 비자로 85일을 체류하고 비자가 만료된 후, 다시 무비자로 90일을 여행할 수 있는 자격이 생깁니다. (단, 비자 만료 후 출국했다가 재입국해야 하는지, 현지에서 신분 변경이 되는지는 국가별로 다르니 확인이 필요합니다.)
Q4. 정확한 날짜 계산은 어떻게 하나요?
👉 쉥겐 계산기(Schengen Calculator)를 이용하세요. 유럽연합(EU) 공식 사이트나 관련 앱에서 제공하는 계산기에 지난 입출국 날짜와 예정 입국일을 넣으면, 정확히 며칠 더 머물 수 있는지 알려줍니다. 수기로 계산하다가 하루 차이로 불법 체류가 되는 경우가 많으니 반드시 계산기를 돌려보세요.
Q5. 그리스 말고 다른 나라로 입국해서 기차로 이동하면 안 걸리지 않나요?
👉 매우 위험한 생각입니다. 쉥겐 조약국 간에는 국경 검사가 생략되는 경우가 많지만, 전산 시스템은 통합되어 있습니다. 출국할 때 여권 스탬프와 전산 기록을 대조하면 모든 동선과 체류 기간이 드러납니다. 입국은 쉬워도 출국할 때 100% 적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