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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폭 돔 뒤편, 매운 향기에 이끌려 들어간 낡은 식당
2026년 2월 12일 밤, 히로시마의 겨울바람은 생각보다 매서웠다. 평화기념공원의 고요함을 뒤로하고 번화가인 혼도리로 넘어왔지만, 가이드북에 나온 유명 오코노미야키 빌딩 앞은 이미 긴 줄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캐리어를 끄는 관광객들, 시끌벅적한 호객 행위. 내가 원하던 '진짜 일본'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런 줄을 서서 먹고 싶지는 않아."
나는 인파를 피해 골목 깊숙한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에비스초(Ebisu-cho) 근처의 좁은 뒷골목. 붉은 제등(초칭)이 드문드문 켜진 이곳은 퇴근한 양복 차림의 회사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담배를 태우거나 웃고 떠드는, 생활의 냄새가 짙게 밴 곳이었다.
그때였다. 콧속을 훅 치고 들어오는 알싸하고 강렬한 향신료 냄새. 한국의 고춧가루 매운맛과는 다른, 혀끝을 저릿하게 만드는 산초(山椒)의 향이었다. 냄새의 근원지는 간판조차 흐릿한 작은 가게였다. 미닫이문 너머로 보이는 내부는 뿌연 수증기로 가득했고, 사람들은 모두 말없이 무언가에 코를 박고 비비고 있었다.
'키사쿠(Kisaku)'.
한자로 '희작(喜作)'이라 쓰인 그곳에 홀린 듯 들어갔다.
"이랏샤이마세!"
머리에 수건을 두른 주인장은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면을 삶으며 소리쳤다. 자리에 앉자 옆자리 샐러러맨이 먹고 있는 붉은 면발이 보였다. 국물이 없다. 다진 고기와 파가 잔뜩 올라간 그 음식.
"저거랑 같은 걸로 주세요."
"시루나시(국물 없는) 탄탄멘, 2단계?"
"네, 그걸로요."
잠시 후 나온 그릇. 젓가락으로 바닥까지 슥슥 비벼 한 입 넣는 순간, 입안에서 폭죽이 터졌다. 혀가 마비될 듯 얼얼하면서도 고소한 땅콩 소스의 맛, 그리고 쫄깃한 면발. 땀이 비 오듯 쏟아졌지만 젓가락을 멈출 수 없었다.
"형씨, 남은 양념에 밥 비벼 먹어야 진짜야."
옆자리 아저씨가 껄껄 웃으며 팁을 줬다.
'한 라이스(반 공기 밥)'를 추가해 남은 소스에 비벼 먹었을 때, 나는 비로소 히로시마라는 도시가 가진 진짜 맛을 깨달았다. 화려하지 않지만 강렬하고, 투박하지만 속 깊은 맛. 그날 밤, 나는 히로시마의 진짜 매력에 완전히 중독되고 말았다.
💡히로시마의 'B급 구르메' 3대장을 공략하세요. (시루나시 탄탄멘, 호르몬 튀김, 코네)
질문자님, 히로시마라고 해서 오코노미야키만 고집할 필요는 없습니다. 현지인들이 퇴근 후 맥주 한 잔과 곁들이는 진짜 소울 푸드는 따로 있습니다. 관광객용 식당이 아닌, 현지인들이 줄 서는 찐 맛집 3곳을 추천해 드립니다.
✅ 현지인 추천 맛집 BEST 3
키사쿠 (Kisaku / 中華そば 喜作): 소설 속에 등장한 바로 그곳. 히로시마의 명물 '시루나시 탄탄멘(국물 없는 탄탄면)'의 발상지이자 성지입니다. 관광객보다는 매운맛을 즐기는 현지인들이 찾는 좁고 오래된 가게입니다.
후쿠시마초의 '아코키(Akoki / あこき)': 히로시마 서쪽 지역의 숨겨진 명물 '호르몬 튀김(내장 튀김)' 전문점입니다. 칼과 도마를 주면 손님이 직접 튀김을 잘라 먹는 독특한 시스템이 있습니다.
마사루 (Masaru / お好み焼き マサル): 오코노미야키를 드신다면 오코노미무라(관광지) 대신 이곳을 가세요. 시내에서 조금 떨어져 있지만, 히로시마 현지인들이 "가장 기본에 충실하고 바삭한 면발"이라고 극찬하는 노포입니다.
📝 왜 이 식당들이 '진짜'인가? 상세 분석
관광 안내 책자에는 잘 나오지 않지만, 현지인들의 일상에 깊이 파고든 이 식당들의 매력과 대표 메뉴를 상세하게 분석해 드립니다.
1. 키사쿠 (Kisaku): 혀를 때리는 '마라'의 원조 🌶️
위치: 나카구 후나이리 (시내 중심가에서 노면전차로 이동)
독특함: 히로시마는 일본 내에서도 '국물 없는 탄탄멘'의 격전지입니다. 키사쿠는 그 붐을 일으킨 원조 격인 가게입니다. 중국의 산초(화자오)를 아낌없이 넣어 혀가 얼얼한 '마(麻)'의 맛을 제대로 살렸습니다.
먹는 법: 나오자마자 30번 이상 비벼야 합니다. 면을 다 먹은 후 남은 고기 양념에 밥을 비벼 먹는 '탄탄 라이스'가 하이라이트입니다. 온천 달걀을 추가하면 매운맛이 중화되어 더욱 고소합니다.
2. 아코키 (Akoki): 노동자들의 소울 푸드, 호르몬 튀김 🥩
위치: 니시구 후쿠시마초 (히로시마역에서 조금 거리 있음)
독특함: 이 지역은 예로부터 도축장이 있어 신선한 내장 요리가 발달했습니다. 곱창, 대창, 허파 등을 튀김옷 입혀 튀겨낸 '호르몬 튀김'은 히로시마 서민들의 안주입니다.
분위기: 세련됨과는 거리가 멉니다. 도마와 식칼이 테이블에 놓여 있고, 갓 튀겨진 튀김을 손님이 직접 한입 크기로 썰어 초간장 소스에 찍어 먹습니다. '덴가쿠(내장 국물 요리)'도 꼭 드셔보세요. 진짜 로컬의 맛입니다.
3. 마사루 (Masaru): 오코노미야키의 정석 🥞
위치: 히로시마역 북쪽 주택가
독특함: 히로시마 오코노미야키의 생명은 '면'입니다. 마사루는 면을 삶은 뒤 철판에서 겉이 바삭해질 때까지 굽는 기술이 예술입니다. 소스 맛으로 먹는 게 아니라, 양배추의 단맛과 면의 고소함으로 승부하는 곳입니다.
팁: '우동 면'과 '소바 면' 중 선택할 수 있는데, 현지인들은 대부분 가늘고 바삭한 '소바'를 선호합니다. 토핑으로 '이카텐(오징어 튀김 과자)'을 추가하면 감칠맛이 폭발합니다.
4. 보너스: 히로시마만의 고기 부위 '코네' 🥓
식당에 가서 메뉴판에 '코네(Kone)'라는 단어가 보이면 무조건 시키세요.
소의 차돌박이 양지 부위인데, 히로시마에서만 부르는 명칭이자 먹는 방식입니다.
주로 철판에 구워 소금과 레몬을 뿌려 먹거나, 살짝 익혀 파와 함께 먹습니다. 쫄깃한 식감과 지방의 고소함이 일품이라 맥주 도둑이 따로 없습니다.
❓ 자주 묻는 질문 (Q&A)
Q1. 일본어를 전혀 못 하는데 주문이 가능할까요?
👉 A. 파파고 이미지 번역을 추천합니다. 소개해 드린 곳들은 관광객 전용 식당이 아니라 영어 메뉴판이 없을 확률이 높습니다. 하지만 메뉴가 단순합니다.
키사쿠: "시루나시 탄탄멘, 1카라(1단계 매운맛) or 2카라(2단계)"
마사루: "소바 니쿠 타마(기본 오코노미야키)" 이 정도만 말해도 주문 가능하며, 번역기 앱을 활용하시면 충분합니다.
Q2. 혼자 가도 괜찮나요?
👉 A. 네, 오히려 혼자가 더 자연스럽습니다. 키사쿠나 마사루 같은 곳은 카운터 석(다찌) 위주로 되어 있어 혼밥하는 현지인들이 대부분입니다. 눈치 보지 말고 들어가세요.
Q3. 시루나시 탄탄멘은 많이 맵나요?
👉 A. 매운맛보다는 '얼얼함'이 강합니다. 한국의 캡사이신 매운맛과는 다릅니다. 입안이 진동하듯 얼얼한 산초 맛이 강합니다. 매운 걸 못 드신다면 "산초 스쿠나메(산초 적게)"라고 요청하거나 온천 달걀을 꼭 추가하세요.
Q4. 히로시마 시내 교통은 어떻게 이용하나요?
👉 A. 노면전차(히로덴)가 가장 편리합니다. 히로시마는 지하철보다 노면전차가 발달해 있습니다. '1일 승차권'을 구매하면 하루 종일 무제한으로 탈 수 있어 맛집 탐방에 최적입니다. 교통계 IC카드(이코카, 스이카 등)도 사용 가능합니다.
Q5. 굴(Oyster) 요리 맛집은 없나요?
👉 A. '카키고야(굴구이 오두막)'를 찾아보세요. 겨울 시즌(11월~3월)에 가신다면 히로시마 항구 쪽에 임시로 열리는 '카키고야'에서 굴을 kg 단위로 구워 먹을 수 있습니다. 시내 이자카야에서도 '카키 후라이(굴 튀김)'는 기본으로 파니 꼭 드셔보세요.